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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olo Exhibits “결” / 제주문예회관
나에게 있어 작업의 핵심적인 가치는 수공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통과 현대적 기법의 대립은 디자인과 제작 사이에서 많은 문제점 들을 수반한다. 서양의 미니멀과 우리의 미니멀에 대한 관념과 정의에 대한 고민에서 “결”은 출발했다. 철학적 요소가 다른 서구의 근대 미술과 공예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우리의 조형관을 먼저 생각해 보려 한 것 이었다. 목수에게는 자연관이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바로 선 생각 말이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그것이 어떻게 뿌려져 다른 나무와 겨루며 자랐을까, 거기는 어떤 산 이었을까, 바람이 심한 곳은 아니었을까, 해는 어느 하늘로 졌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본다. 자연과 나는 어떻게 관계 맺어질 것인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귀어 지는가를 고민한다. 체험을 통해 문제점을 이해하고 해결함을 존중한다. 예측하고 모델링된 형태의 과정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의미가 나에게는 역리로 받아 들여진다.
전통 목가구의 기반을 둔 내 작업은 제작 과정 속에서 몸소 느껴지는 행위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행위와 질서는 순리에 의해 탄생하고 소멸해간다. 도면은 없다. 주변에 떠도는 것들을 기록으로서 에스키스를 하는 것이 작업의 전부이다. 도면을 따로 그리지 않지만 작업 대상에 깊숙이 몰입하며 생각을 완성해 나간다.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이다. 내 자신의 형태적 접근이 조선시대 목 가구에 근거할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바로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닿기를 원한다. 물 위에 돌이 있어야 물결이 만들어 지고 세상의 모든 일들과 관계는 시간을 올곧게 마주하는 순간 보이게 된다.
순리(順理)와 역리(逆理)가 교차하는 나무의 결
김연주(문화공간 양 기획자)
순리(順理)와 역리(逆理)가 교차하는 나무의 결 김연주(문화공간 양 기획자) 김현성은 소목장(小木匠)이다. 소목장은 나무로 가구, 그릇, 농기구 등을 만드는 목수다. 그렇다면 작가가 만든 작품은 가구일 텐데 이 가구들이 조금 이상하다. 쓸 수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다. 작가는 가구를 쓸 것이 아닌 볼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조각 작품인 듯하다. 모든 작품이 가구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전통 가구의 형태나 용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작품 역시 하나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가구이지만 가구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쌓아온 기술, 미감, 상상력을 결이라는 철학 위에서 펼쳐낼 뿐이다.
하나의 작품에 쓰인 여러 종류의 나무는 작품의 색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대부분 작품에 사용된 낙동법(烙桐法)으로도 색을 표현을 넓혔다. 낙동법은 오동나무를 인두로 태운 후에 표면을 살짝 갈아내는 기법이다. 나무를 태우는 시간, 갈아내는 깊이, 태우고 갈아내는 작업의 반복 횟수에 따라 수많은 색을 띠는 검정이 만들어진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낙동법은 검은 색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나무의 결을 잘 살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이자 모든 작품의 제목인 ‘결’에는 소목장으로 사는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나무를 다루면서 자연스러운 나무의 결이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따라 생긴 형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작품 안에 그러한 순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에 재현한 파동 즉 물의 결은 순리를 시각화한 형태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자연의 이치를 따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자 했던 작가는 관람객 또한 작품 앞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의 결과 색에 마음을 쓰며 작업했다. 그러나 역리 또한 자연의 이치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 결이 부딪치면 결은 뒤로 물러나기도 한다. 가구의 형태를 파괴하는 실험은 이런 역리의 철학에서 시작되었다.
전체를 까맣게 태운 경상(經床)의 상판에는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고 한가운데 그 물결을 만든 돌 하나가 놓여있다. 경상이라고 하니 책을 올려놓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만히 쳐다보며 마음을 다스리기에 더 적합해 보인다. 실제로 작가는 수행하듯 나무를 태우고 갈아내고 태우고 갈아내기를 반복하며 추운 겨울 3개월에 걸쳐 <결 #4>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이토록 깊은 까만색을 얻었다. 장석(裝錫)까지 모두 직접 손으로 만들어 붙였다. 장석의 노란 빛, 상판의 양쪽 끝에 붙인 상수리나무의 붉은 빛, 낙동을 한 상판과 하부 구조의 까만 빛이 적절한 비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통 전통적인 경상과 다르게 하부구조를 다리가 아닌 통판으로 만들어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이렇듯 공간을 꽉 채운 덩어리는 경상을 조각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경상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작가는 작품을 가구와 조각의 경계에 놓았다.
가구와 조각의 경계는 <결 #3>에서 더 크게 흔들린다. 두 개의 농은 서로 팔을 뻗어 서로를 당기고 있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농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완벽하진 않고, 심지어 기울어져 있다. 기능을 떠난 형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직선과 곡선, 나무판과 빈 공간, 본연의 나무색과 낙동 후의 검은 나무색 등이 대비를 이루며 조형미를 완성하였다. 특히 농과 농 사이 큰 결의 형태를 지닌 검은 나무판과 그 아래 자연스럽게 생긴 무정형의 빈 공간의 대비가 작품 주변의 공간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전통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이지만 전통에는 없었던 자신만의 가구를 찾아내었다. 가구의 형태를 깨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가구를 만든 것이다.
나무판과 줄자가 정사각형 모양을 이루며 바닥에 놓여있다. <결 #5>에서는 가구와 조각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나무판과 줄자로 재현된 한 평은 전통을 고수하는 소목장으로서의 작가 정체성을 드러낸다. 특히 낙동법과 나무와 나무를 잇는 결구법(結構法)은 작가가 전통 장인임을 보여준다. 줄자 또한 목수를 상징한다. 가구를 만들기 위해 자로 나무의 길이를 재는 일은 작업의 기본에 속한다. 소목장이기에 작가는 치수에 대한 개념이 남다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이라는 단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평은 건축의 공간의 넓이를 측정하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집이나 절을 짓는 대목장(大木匠)도 아닌 소목장이 한 평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가구는 평이라는 단위로 크기를 말하는 건축의 공간 안에 놓인다. 가구가 놓인 장소에는 삶이 있고 삶을 지켜나가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재현된 한 평은 재현된 삶의 공간이다. 한 평 넓이의 <결 #5>를 보여 관람객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가구를 만드는 작가의 모습에서부터 그 작가가 만든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말이다. 이처럼 작가는 가구를 만들며 사람을 생각했다.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결 #5-2>로 이어진다. 작가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은 밥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밥상도 전통적인 형태와는 아주 다르다. 사방에서 각각의 상판을 꺼냈다 넣었다 할 수 있다. 상판을 몇 개 꺼내느냐, 얼마나 많이 꺼내느냐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밥상이 가구가 아닌 건축적 구조물로 읽힌다. 중앙의 상판은 나무를 태운 후 많이 갈아내어 옅은 검은 색을 만들어, 태우지 않은 오동나무, 느티나무, 참죽나무의 색과 잘 어우러지게 했다. 동백기름으로 표면을 마감한 곳은 나무색이 진해져 또 하나의 색을 더했다.
입체가 아닌 평면의 조형성을 탐구하며 가구의 형식을 완전히 깨버린 <결 #10>과 <결 #11>은 이제 순수 미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작가는 가구를 벗어난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현대 기법도 도입했다. 두 작품에 사용된 현대 기법은 나무를 수증기에 쪄서 구부리는 스팀 벤딩(steam bending) 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곡선 형태를 원하면 휘어있는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나무를 휘는 기술이 없었다. 나무의 곡선을 그대로 살리는 작업을 순리라고 한다면 인위적으로 나무의 형태를 만드는 스팀 벤팅 기법은 역리하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순리도 역리도 크게 보면 결에 모두 있다고 한다.
<결 #10>은 평면과 입체의 경계에 있다. 평면 작품처럼 벽에 걸어 감상하도록 제작되었지만, 나무의 두께와 표현의 굴곡으로 인해 입체감이 있다. 좌우의 강한 시각 대비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다. 작품 왼쪽은 검은 색의 넓은 면으로 처리되었고, 오른쪽은 10종류의 나무를 얇게 켜서 세로로 차곡차곡 붙여 다양한 색의 선처럼 보이게 하였다. 또한, 왼쪽은 여러 장의 나무판을 붙인 뒤 물결무늬를 깎아서 만들어 자세히 살펴보면 물결의 깊이에 따라 층층이 드러나는 나무를 볼 수 있으며, 오른쪽은 얇게 켠 나무판을 높이를 달리해 세로로 붙여나가며 물결을 만들었다. 따라서 왼쪽은 깊고 무겁고 고요한 느낌이 강하고, 오른쪽은 가볍고 생동감 넘친다. <결 #11>에서는 평면성을 더 강하게 실험했다. 긴 곡선과 짧은 직선, 큰 호와 작은 평면이 대비를 만들고, 오동나무와 호두나무로 색의 조화를 만들었다.
절대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계속해나가는 전통공예의 장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작가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가구를 만들면서도 가구의 형태를 계속 깨버리고 전통 기법과 현대 기법을 동시에 사용한다. 나무의 결을 살리면서도 어느새 나무의 결을 더 커다란 결로 덮어버린다. 나무를 다루면서 알게 된 세상의 이치는 결국 순리와 역리가 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전통을 따르며 또한 그 전통을 깨어가는 것, 이것이 김현성의 작품이다. 따라서 앞으로 나무의 어떤 잠재력을 끌어내서 보여줄지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