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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olo Exhibits “결 #순리와 역리” / 가시리 창작 지원센터
자연과 세계를 구분하려는 인간의 죄는 이용의 순리적 세계를 통해 구원받을 것이다. 받아들이고 분리하는 차별의 흐름은 항시 창조와 소멸의 세계를 이끌었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 은 서로를 구분하려 할 때에 자연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형태를 비 우 고 물이 되어 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연(自然)의 결을 구현하는 가치, 사유하는 손
Studio 126 권 주 희 큐레이터
문명은 우리에게 자연을 가르친다. 인공성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거치는 길이다. 그렇지만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인공과 자연이 이루는 조화 안에 탁월한 인간 정신에 깃든 자연스러움이 있다.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책』 중에서-
김현성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을 추구한다. 여기서 공존이란, 각각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마음이며 이 숭고함을 전통문화에 기반한 목공예의 형태로 담아낸다. 작가에게 전통문화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또 자신이 나무와 바람을 흔드는 ‘존재론적 닮기’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예는 물건을 만드는 재주나 기술을 일컫는다. 예술이라는 분야 안에서 각 장르가 구체화되어 공예는 실생활에서 쓰임에 중심을 두는 실용 예술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가는 공예라는 분야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이끄는 손을 가지고 있다. 즉 ‘사유하는 손’이다. 목공예의 기술을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현대미술을 다루는 전시장 안으로 들여오는 시도를 한다. 조선 시대 목가구의 전통을 갖추되 기법에 제한을 두지 않은 방식으로 시각예술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들추어보는 눈과 끈질긴 탐구력은 ‘사유하는 손’을 뒷받침한다. 제주의 공예는 삶 속의 철학과 사상이 실용과 함께 있다는 특징을 인지하고 그 표현방식에도 주목한다. 특히, 제주도와 남해안 도서 일대에서만 자생하는 황칠나무에 관한 연구는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황칠나무는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 않는 수종으로 수피에 상처를 내면 노란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황칠이다. 명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황칠에 대한 리서치 과정은 전통을 유지하려는 의지이며 사회에 제 값의 메시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그의 염원이다.
공예는 보편적인 물질적 특성에 근간을 두고 있어 그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이 크고 또 그러한 요소가 작업 방식을 결정한다. 특히, 작가가 다루는 목재는 색과 결, 유연성, 밀도, 강도, 부식에 대한 저항 등이 다르므로 어떤 나무를 고르느냐가 작업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목재는 더하거나 빼는 공정으로 모양을 만들 수 있고 어느 정도 구부릴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작가가 목재를 밴드형으로 절단하여 스팀을 가하는 ‘스팀 밴딩(Steam banding)’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곧은 나무가 스팀 가공으로 인해 유연해지면, 원하는 형태로 변형하고 다시 건조를 시킨다. 이것은 작품의 재료를 마련하는 과정에 불과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구현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19년부터 최근 작업까지 관통하는 ‘결’이라는 개념 안에서 올해에는 <순리와 역리>를 선보였다. 목(木)작업에 기본을 두되 그 밖의 자연 요소인 돌과 모래를 함께 들여왔다. 인공적인 목작업 위에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돌과 모래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결을 드러낸다. 특히 <결#0>은 관람자가 직접 끌개와 같은 소도구를 이용해 모래에 무늬를 드러내도록 제작되었다. 모래와 도구가 스치는 청각, 촉각까지 작품의 요소로 작용한다. <결#1 순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방향으로 파동을 이루며 나아가는 것과 반대로 <결#2 역리>에서는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가지들이 군집을 이루어 서로 다른 시작점에서 출발하지만 다시 한데 모이는 형상이다. 본래의 나무가 가지는 결과 인공적인 힘을 가한 형태, 그리고 황칠이 더해져 복합적인 개념을 다루는 하나의 기억 장치가 된다. 아래에 물레를 설치하여 관람자가 직접 회전시킬 때에, 비로소 디테일한 요소들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조화롭게 화합하며 합쳐진다. 일반적인 순리에 거스르는 것을 역리라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역리는 거스르는 것을 통한 표용과 화합임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2020년 개인전 <순리와 역리>의 작업은 모두 수평으로 배치하고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다른 회화나 입체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차별성을 지닌다. 공예의 매력은 작가의 노동집약적인 작품을 관람자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촉각으로 느껴서 얻어지는 질감 또한 하나의 감상 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수평적 배치를 함으로써 주된 재료인 목재는 작가의 개념을 담는 큰 그릇, 즉 바탕으로 기능하고 그 안에 자연과 형상을 담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마치 그의 삶 속에 항상 동행하는 나무에 뿌리를 두고 생각과 이상, 개념을 다양한 가지들로 엮어내어 발전시켜 나가는 작가의 태도와 흡사하다.
김현성의 작업에는 자연, 전통, 기술, 휴머니즘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재료가 가지는 물질적 언어를 바탕으로 노동이 집약된 작업은 만들어지는 순간에 대한 정적인 기록이 아니라 진화하는 개인과 사회, 자연과 이상에 대한 사고의 지표이다. 따라서 작품을 보면 여러 정보가 그 순간, 서로의 관계 속에서 함께 읽힌다.
일반적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들은 자신이 다루는 재료와 기술을 찬미하고 이를 작업이 주는 의미의 원천으로 여긴다. 장인의 성품과 손을 가지고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김현성은 ‘손 문화’로 이어가는 공예적 특성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경험을 정리한다. 그에게 공예란, 현시대에서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신체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전통문화의 유취를 맡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자신이 쏟아붓는 노력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예술가의 이해와 내적인 품성이 담긴다.
작가가 <순리와 역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 또 그 안에 깃든 자연스러움이다.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 스스로 그러한 것,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이다. 나무라는 재료와 사유하는 손을 통해 제작된 작품들은 작가의 복합적인 개념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그리고 이 장치는 시간을 초월하여 생각을 구현하는 가치로 이어진다.